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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문화예술정보
작성 2017-01-14 20:15:30   조회: 98
제목 샤또 무똥 로췰드
이름 기본관리자
샤또 무똥 로췰드

이 와인의 이름에서 로췰드란 영국 출신의 은행가 집안이자 무똥 로췰드를 소유하고 있는 가문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다. 영어로는 로스차일드이다. 무똥(Mouton)은 프랑스어로 양이라는 뜻인데, 필립 로췰드 남작*이 태어난 별자리가 산양자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 1988년에 필립 로췰드 남작이 죽는다. 그는 65년 동안 무똥을 지켜왔다. 와인을 만들 때의 포도 비율을 바꾸고, 꾸준히 품질을 향상시키면서 무똥의 명성을 유지해 온 이가 바로 그다. 필립 남작을 기리기 위해 1987년 라벨에는 포도송이를 배경으로 있는 필립 남작의 초상화가 그려진다. 그림 아래 적힌 글도 필립 남작의 뒤를 이어 무똥 소유주가 된 딸 필리핀느 여사가 오랜 세월에 걸쳐 무똥의 품질을 쇄신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회고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1986년까지 무똥에 적혀 있던 필립 남작의 서명은 1987년을 기점으로 필리핀느 여사의 사인으로 바뀐다.

로스차일드 런던 지부를 설립한 네이선 로스차일드의 아들 나따니엘(Nathaniel)은 1850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자신이 직접 생산한 와인으로 손님들을 대접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1853년 프랑스 보르도 중심에 있는 샤또 브란느 무똥(Château Brane-Mouton)을 사서 샤또 무똥 로췰드라 이름을 바꾼다. 2년 후 1855년 보르도 와인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는 와인의 등급이 매겨진 것이다. 이때 샤또 무똥 로췰드는 2등급을 받는 뼈아픈 상처를 얻게 된다.
그 후, 1922년 필립 드 로췰드 남작(Baron Philippe de Rothschild)이 20세의 젊은 나이로 샤또 무똥 로췰드(Château Mouton Rothschild)를 맡게 되면서 일대 개혁이 시작된다. 당시까지는 포도밭에서는 와인을 생산할 뿐, 와인 상인들에 의해 병입되고 유통되었다. 또한 와인 거래 역시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으며, 따라서 포도밭들은 이윤을 잘 내지 못했다. 필립 남작은 1924년부터 와인 업계에서 최초로 자신이 만든 와인을 자신이 직접 병에 담아 소비자에게 내놓았다.** 이것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시도였는데 이제 이 방식은 전 세계 와인업계에서 일반화되었다.

**고급 와인의 라벨에서는 직접 ‘샤또에서 병입 하였음’을 나타내는 미쟝 부떼이 오 샤또(Mise en bouteilles intégrale au château)를 발견할 수 있다.

필립은 또한 와인 라벨에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했다. 먼저 그래픽 미술가인 쟝 깔루에게 의뢰해 양머리와 다섯 화살(로스차일드가문의 상징)을 1924년 빈티지 라벨에 부착했다. 1945년 프랑스가 독립을 맞자 필립은 그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승리의 V자가 들어간 필립 줄리앙의 작품을 와인 라벨에 넣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화가의 그림 한 점씩을 라벨에 실음으로써 우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라벨에 실을 그림을 그릴 화가를 선정하는 순간은 그 자체로 뉴스가 되어 전 세계로 전파된다. 와인과 좋은 그림의 만남으로 인해 이 와인은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와인 컬렉터들의 수집 대상으로도 첫손에 꼽힌다. 이 라벨에 참여했던 화가들은 미로, 달리, 샤갈, 칸딘스키, 피카소 등의 쟁쟁한 미술가들이었다. 이 작업에 참여한 미술가들은, 단지 자신의 라벨이 붙는 해와 또 다른 해의 샤또 무똥 로췰드 와인을 받는 ‘우아한 거래’로 보수를 대신했는데, 이러한 거래를 거부한 화가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명품의 가치를 높인 그의 라벨 아이디어는 전 세계 와인 수집가들이 매년 새로운 라벨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아티스트 라벨 아이디어는 최근 다른 포도밭에서 모방하고 있는 추세이다.***

*** 미국의 켄우드 아티스트 시리즈와 호주의 루윈 에스테이트 아트 시리즈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립 남작이 거둔 최고의 업적은 나따니엘이 충격을 받았던 2등급이라는 수모를 다시 1등급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필립 남작은 무똥이 2등급으로 정해진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1855년 등급 분류의 기준이 사실상 가격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랜 세월 이전부터 샤또 라피뜨 로췰드와 샤또 무똥 로췰드 사이에는 라이벌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문제는 1868년 당시 로스 차일드가의 남작으로 군림하고 있던 나따니엘의 숙부이자 장인인 제임스가 보르도의 와인 역사이자, 왕실에 들어가는 와인으로 이름을 떨친 샤또 라피트를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는 같은 나무에서 자라난 두 가지는 이렇게 해서 경쟁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가격 경쟁이 둘 사이를 더욱 갈라놓았는데, 무똥이 비싼 가격에 와인을 팔면, 라피뜨는 더 비싼 값에 와인을 파는 식이었다. 사실 당시 라피뜨와 거의 같은 가격에 팔린 무똥이 1등급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을 뚫고 118년 만에 결국 1973년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승인으로 무똥은 1등급으로 승급되었다.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간 필립은, 무똥의 승격을 축하함과 동시에 그 해 사망한 피카소를 기념하기 위해 라벨에 피카소의 수채화를 넣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로운 좌우명이 기입된다. “Premier je suis, Seconde je 련, Mouton ne change.(나, 무똥은 현재 일등이다. 이등이었던 시기는 지났다. 무똥은 영원히 일등이다.)”
그래서 1973년은 무똥 로췰드와 피카소가 만난 해이다. 무똥으로서는 특 등급에 오르는 경사를 맞이한 해이고,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피카소는 생애를 마감한 해이다. 1973년산 무똥 라벨에는 피카소의 그림 <바쿠스의 주연>이 그려져 있다. 특 등급 승격을 기념하고, 피카소의 서거를 애도하는 의미가 동시에 라벨 한 장에 담긴 것이다. 와인은 흉작에 가까운 해였지만, 피카소의 그림 때문에 품귀현상을 빚었던 빈티지이다. 이 피카소의 그림은 피카소의 딸 파로마가 무똥 와인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작품을 1973년 라벨에 사용하도로 허락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필립 남작의 놀랄만한 정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보다 전문적인 기술과 샤또 무똥 로췰드의 이름이 더해지면 더 잘 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필립의 생각은 1978년 나파 밸리의 로버트 몬다비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해서 1980년 4월 파리와 샌프란시스코 언론들은 일제히 프랑스와 미국이 한 팀이 되어 새로운 와인, ‘오퍼스 원’****을 만들어내었다.

**** 라틴어로 작품 1번이라는 뜻이다.

현재 회장으로 있는 그의 딸인 필리핀 남작부인 역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사업자적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녀는 1981년 20세기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총망라한 샤또 무똥 로췰드의 유명한 와인 라벨 시리즈의 첫 전시회를 주관했고, 1988년 아버지인 필립의 생존시보다 매출액을 두 배 이상 증가시켰다. 또한 그녀는 1997년 칠레의 ‘비나 콘차 이토로’와 칠레 프리미엄 와인‘알마비바(Almaviva)’를 생산하는 등 무똥 로췰드의 실력을 전 세계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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